나의 수구떼 지도에서 부실한 부분이 꽤 많은데 그 가운데 하루 속히 채워넣어야 할 부분이 이 '조중훈가'이다.
그렇다면 왜 하고 많은 기업인들 가운데 하필이면 조중훈이냐??
나는 이상하게 선단식 황제경영, 전제군주식 경영하면 이병철이나 정주영보다 조중훈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조중훈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기업인 가운데 하나다.
이병철, 정주영과는 느낌이 다르다. 이병철, 정주영은 어쨌든 무에서 유를 창조한 사람들이다. 또 어쨌든 세계 1등을 해낸 사람들이다. 조중훈은 무엇을 창조했나? 어떤 부분에서 세계 1등을 차지했나? 생산한 게 별로 없다. 이병철, 정주영은 빛이 있고 그림자가 있는 반면, 조중훈은 그림자가 너무나도 짙을 뿐만 아니고 빛을 발견하기가 무지 어렵다.
따라서 조중훈을 기업인 가운데 최고 명문가문으로 가장 먼저 넣어주지 않을 수가 없다.
한진의 계열사를 보면 대한항공을 비롯해서 한진중공업, 한진종합건설,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한진정보통신, 한일레저, 칼호텔네트워크, 한국글로발로지스틱스시스, 싸이버로지텍, 토파스여행정보, 한진관광, 동양화재해상보험, 메리츠증권 등등이다.
이게 한우물만 파는 건가? 창업회장을 칭송하는 것은 좋다. 부자 조중훈을 떠받드는 것도 좋다. 그러나 사실관계는 분명히 하고 찬양을 해야 할 거 아닌가? 위에 예시해놓은 계열사들이 어떻게 한우물인가?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저거 말고도 부지기수로 많다.
조중훈하면 수송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송은 인체의 혈관과 같은 역할을 해왔다는 조중훈의 말도 맞다. 그러나 수송업의 한우물만 팠다는 말은 말이 안된다. 메리츠증권이 수송업이 아니기 때문에...
또 한가지 조중훈에 대한 근거없는 칭송이 있는데, 나도 어릴 때 조중훈의 전기를 읽고 그렇다고 굳게 믿어왔다. 뭐냐면 조중훈이 무지하게 가난한 정비공 출신이라는 거다. 아니면 무슨 트럭운전사 출신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인제도 얼마전에 그 따위 소리를 떠벌리는 것을 내가 들었다. 모르는 소리다. 조중훈이 상당히 나이를 먹은 후 그 부친이 사업에 좀 실패하긴 했어도, 서울 토박이로서 상당한 지주집안 출신이었다.
무슨 맨주먹으로 일어났느니 하는 소리가 다 개떡같은 소리란 말이다. 조중훈이 1920년생인데 1942년에 이연공업사라는 공장을 설립했으니 22살 때 사장이 되었단 말이다.
자기 아버지 도움없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22살짜리가 무슨 재주로 사장이 된 단 말인가? 이게 맨주먹으로 일어선 건가?
광복 이후 조중훈은 화물운송업을 전개했는데 당시 조중훈처럼 화물운송업을 하는 사람은 경인지역에만 50여곳이 있었다. 조중훈이 약진하게 된 배경은 따로 있다. 미군 화물수송을 따내면서 비로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다.
조중훈은 미군의 신뢰를 얻기 위해 당시 부자들이 타고다니던 중고 지프 대신 국내에서는 구경도 하기 힘들었던 벤츠를 타고 다녔다. 또 자신의 자택으로 미군들을 초대해서 풀 코스 요리를 극진히 대접하면서 엄청 매달렸던 모양이다. 그것도 쥐뿔이라도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심지어 귀국하는 미군간부의 송별식까지 열어주었다. 그러니 당근 미군들이 좋아할 수 밖에. 이것은 훗날 조중훈이 비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즉 조중훈이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던 장성들의 도움으로 주월미군의 화물수송까지 맡은 것이다. 베트남전은 조중훈이 명실상부한 재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안겨주었다. 그러니까 한진은 명실상부한 친미자본이다.
한진이 역사적으로 유별나게 권력과 같은 '힘'에 대해 숭배에 가까운 비정상적 행태를 보여온 이면에는 친미자본으로서의 태생적 한계가 표출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힘있는 자에게 의존해서 자신의 삶을 유지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해 가는 방식이다. 어찌 미국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며, 미국에게 할 말 하겠다는 현정권이 밉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쨌든 이런 방법으로 한국은행의 가용외화가 5000만 달러도 안되는 시점에서 조중훈은 1억달러가 넘는 돈을 벌었다. 그야말로 떼돈을 벌어들인 것이다.
그 떼돈으로 조중훈은 동양화재해상보험을 사들이고, 한진건설을 설립하고, 인하대학교까지 베트남 전쟁에 적극 협력한 대가로 불하받았다. 게다가 국영기업이었던 대한항공까지 인수하였다.
조중훈은 전제군주식 독단성으로 유명하다. 총수가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르는 것이다. 임원들의 의견은 전혀 귀담아 듣지 않았다. 조중훈의 "돌격 앞으로" 명령 앞에 모든 의견들은 묵살되기 일수였다. 조중훈의 주장만이 관철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사내 언로가 동맥경화를 일으키고 기업문화가 왜곡되는 것은 당연하다.
조중훈의 아들인 조양호 또한 임직원들에게 매우 호된 것으로 유명하다. 호된 것도 좋지만 호되게 혼내고 나서는 풀어주기도 해야 하는데 대한항공 임직원들에 의하면 전혀 그런 성격은 못된다고 한다. 심지어 차갑기 그지없다는 혹평이 잇따른다.
게다가 조중훈은 인천 짠돌이라고 불릴만큼 사원들에게 월급을 박하게 주는 인물로 유명했다. 출퇴근 버스를 폐지하는 등 사소한 것으로 직원들의 기를 꺾었다. 다른 재벌그룹에 비해 복지혜택이 낮아 사원들의 근무의욕도 물론 낮았다.
또 조중훈의 회사는 육해공군 출신과 민간인 출신의 벽을 만들고, 학연과 지연을 가리는 연고주의가 팽배했다. 상관의 잘못을 보고도 말 한마디 못하는 권위주의가 기승을 부려 사원들의 사기가 완전 저하됐다.
그 결과는 고객 7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회사로 전락한 것이다.
조중훈의 냉혹성은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대한항공을 성장시킨 동생 조중건을 팽시킨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룹 차기회장으로 예견되던 동생 조중건을 내쫓고 장남 조양호를 앉힌 것이다.
동아일보에 의하면 조중훈은 동생 중건에게서 대한항공 사장 자리를 회수한 뒤 장남에게 물려주면서 “하와이에 있는 호텔 하나만이라도 달라”는 동생의 마지막 부탁마저 끝내 거절하고 몰아냈다고 한다.
사주가 이렇듯 유별나게 냉혹한 성품이다 보니 대한항공은 의사소통이 활발하지 못하다고 한다.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바쁘다고 한다.
임원들이 그렇게 많은데도 회장이나 사장에게 소신껏 얘기하는 인사는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오직 상명하달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결국 이런 관료화된 사내분위기로 인해 김대중정부 들어와 큰 코를 다치게 된다.
김대중정부 출범 겨우 2년만에 무려 14건이나 사고를 낸 대한항공은 급기야 대통령이 직접 국무회의에서 “대한항공은 전문경영인이 나서 인명중시 경영체제로 바꿔야 한다”는 ‘폭탄발언’을 하게 만들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무서운 직격탄을 쏘았다. "대한항공 사고는 오너경영의 실패를 잘 보여주는 케이스다"
김대중 대통령의 언명이 떨어지자 다음날 강봉균 경제수석이 나서서 "경영인 바뀌는 거 정도는 대책도 아니다"라고 겁을 주었다. 드디어 중통령이라고 불리우던 최고실세 박지원 수석까지 "대한항공의 문제는 기업의 문제만이 아니라 국가의 문제"라고 했다.
조중훈은 정권실세들의 기세등등함에 겁을 먹고 대한항공 회장직에서 물러난 후 전문경영인 심이택을 앉혔다.
그러나 늦었다. 국세청 특별세무조사팀 240명이 한진그룹을 접수하였다. 국세청은 한진그룹의 1조 395억원의 탈루소득을 적발하고, 5416억원을 세금으로 추징하였다. 살면서 그렇게 국세청 직원들이 멋있어 보인 적이 없었다. 정치적인 의미가 있건 없건 탈세를 막는 것이 국세청의 할 일이니까 잘 한 거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은 직접 외국순방차 대한항공에 탑승한 김대중대통령 앞에 "죄송합니다."라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조양호를 거들떠도 보지 않은 채 입을 굳게 닫았다.
사실 이 사태는 조양호가 스스로 자초한 것이었다. 조양호는 국민의 정부 건설교통부 장관 면전에서 항공국장을 꾸짖을 정도로 권위의식에 젖어있었다고 한다. 옛 교통부를 대한항공 서소문지점으로 인식할 정도였다. 대한항공이 여러번 항공국장을 갈아치웠다고 한다.
이같은 위세는 조중훈이 역대 군사정권에 정치자금을 대 주고, 국적항공사의 대표로서 대우를 받으며, 한편 특별한 역할을 하면서 생긴 것이다. 이런 권력과의 밀착관계 속에서 독점적 지위를 보장받으면서 안전문제에 관한 노력은 게을리했다는 것이다.
대한항공의 위세를 더 이상 눈뜨고 봐 주기 어렵다는 공식보고서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올라갔다. 김대중 대통령이 한진을 찍어낸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씨 가문은 미봉책으로 사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권력핵심부에 접근하려고 무지 노력했다고 한다. 한편 뒤로 완전히 물러난 것으로 알았던 조중훈과 조양호가 대한항공 경영에 관여한다는 보고가 올라가 김대중대통령을 진노하게 만들었다.
"조회장이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군."이라는 대통령의 지적이 있자마자 국세청 요원 240명이 한진그룹 사옥과 김포 대한항공 본사, 여의도 한진해운 등 한진그룹 계열사 5곳을 전광석화같이 접수하였다. 한진 직원들은 부동자세로 대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탈세, 외화도피, 기업자금유용, 변칙증여의 혐의를 잡아냈다. 검찰도 이에 맞춰서 반부패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여 한진을 압박하였다. 한진 창사이래 최대의 위기였다. 물론 이 사태로 조중훈은 너무 고령이었기 때문에 구속이 안됐지만 조양호는 철창행을 피할 수 없었다.
이런 결과가 빚어진 이유를 김대중 납치사건과 조중훈이 관련이 있다는 점과 조중훈이 민자당 김영삼 후보를 열성적으로 지지했다는 점 등을 들기도 하지만 그것은 사태의 본질을 흐리는 발상이다.
전근대적인 지배구조를 바탕으로 전제군주와 같이 황제경영을 하면서 독점적 지위에 안주하면서 사회적 책임을 망각하고 범법을 일삼은 것에 대한 사필귀정의 응보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73년 김대중납치사건 당시 조중훈의 행적에 대해 의심을 품지 않는 것은 아니다. 출입국 기록에 의하면 조중훈은 김대중 납치사건 직후인 8월16일부터 9월21일 사이 수 차례에 걸쳐 도쿄를 오간 것으로 확인된다고 한다.
조중훈이 납치무마비 조로 3억엔을 들여 다나카를 매수한 것도 문명자 기자에 의해 밝혀졌다. 이렇게 3억엔을 들여 다나카 매수공작에 성공한 후 조중훈과 대한항공은 승승장구했다. 경쟁사 하나 없는 독점재벌로 족벌 경영의 극을 치닫다가 결국 99년 화를 입은 것이다.
또 조중훈은 92년 대선에서 노골적으로 김영삼 후보를 지지하고 공공연히 김대중 후보를 적대시했다는 것도 세간에 알려진 바 대로다. 간이 배 밖으로 나와도 유분수지 한진중공업 LNG선 건조에 착수하면서 "나는 세계에서 제일 좋은 배를 지을 터이니, 여러분은 김영삼 후보를 당선시켜 달라."고 연설했다.
하여튼 여러가지로 김대중 대통령에게 밉보여서 장남 조양호가 감옥까지 가는 신세가 됐지만 또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서 얼마 안 있어 특사로 풀려났다. 경제발전에 다시 동참할 기회를 준대나, 뭐래나.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패가망신, 가문이 뿌리째 날아갈 뻔했지만 여전히 조중훈 일가가 막강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공룡처럼 버티고 서 있는 대저택에 폭풍우 한번 지나간 정도에 불과하다.
조중훈의 동생 조중건의 딸 조윤정은 이동원의 아들 이정훈과 결혼하였다. 이동원은 김동조와 한패로서 민주개혁세력의 집중감시를 받는 사람이다. 이동원에게는 이정은이라는 딸이 있다. 1959년생이다. 1959년생이 2002년에 대학의 학장이 되었다. 바로 이동원이 이사장으로 있는 동원학원의 동원대학 학장이다. 이정은의 남편은 한일투자신탁 사장으로 있는 이정진이라는 사람이다.
조중훈의 형 조중렬의 아들 조지호는 이승만정권하에서 내무부 차관을 지내고 박정희정권하에서 상공부 장관을 지낸 이병호의 딸 이숙희와 결혼하였다.
조중훈의 큰 아들 조양호는 박정희 정권 하에서 교통부차관을 지낸 이재철의 딸 이명희와 결혼하였다. 담당 주무부서의 고위관료의 딸과 결혼을 한 것이다.
조중훈의 둘째 아들 조수호는 최은영과 결혼하였다. 최은영의 아버지는 NK그룹 회장 최현열이다. 최현열의 부인은 신정숙이다. 신정숙의 오빠가 그 유명한 롯데그룹 신격호회장이다. 또 다른 오빠는 농심그룹 신춘호회장이다. 또 다른 오빠는 일본 산사스 식품의 신선호회장이다.
그러니까 조중훈의 둘째 아들 조수호의 부인 최은영의 외삼촌이 바로 어마어마한 신격호, 신춘호, 신선호다. 무섭지? 롯데그룹의 후계자로 유력한 신동빈 부회장은 당근빤스 최은영의 사촌오빠다.
사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조중훈의 며느리인 최은영의 외삼촌 신선호의 딸 신유나가 태광그룹 창업자인 이임룡의 세째아들 이호진과 결혼하였다. 이 이호진의 매형이 양원용이다. 양원용의 사촌누이인 양경희가 중앙일보 홍석현의 동생 홍석조와 결혼을 하였다.
조중훈의 막내 아들 조정호는 LG 창업자 구인회의 아들인 구자학 전 LG 반도체회장의 딸 구명진과 결혼하였다. 이 조정호의 장모인 이숙희는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의 딸이다. 그러니까 조중훈의 막내아들 조정호의 부인 구명진의 외삼촌이 삼성그룹 이건희회장이다. 게다가 LG그룹 구본무회장은 조중훈 며느리의 사촌오빠가 된다. 헐!!!!!!!!!!
그런데 졸라 희한하다.
잘 봐라. 조수호와 조정호가 형제다. 그런데 조수호는 처의 사촌형부의 사촌누이의 남편의 형으로 홍석현에게 도달하고, 조정호는 처의 외삼촌의 처남으로 홍석현에게 도달한다.
똑같은 형제인데 조수호와 홍석현은 같은 급이고, 조정호와 홍석현은 조정호가 한수 아래다. 껄껄..
어쨌든 조정호가 요즘 회장으로 있는 메리츠증권에 부회장으로 김한이라는 사람을 임명했다. 김성수편에서 언급했듯이 김한은 삼양 김연수의 둘째 아들 김상협의 아들이다.
한진의 3세들은 아직 본격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았다. 이들이 결혼하는 모습은 정말 장관일 것이다. 어떻게 엮이는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 뱀발 1 :
조선일보 방응모 편에서 결정적으로 빼먹은 것이 하나 있어서 보충한다. 방우영의 세째 딸 방혜신이 대양산업 회장인 정연욱이라는 사람과 결혼을 했는데 정연욱의 아버지가 신한국당, 한나라당 간판으로 울산 동구에서 국회의원을 한 그 유명한 정재문이다.
정재문의 부인 박영애의 동생 박애자가 국회의장을 지낸 이재형의 아들 이두용과 결혼하였고, 이 이재형의 동생, 그러니까 이두용의 작은 아버지가 대림그룹을 창업한 이재준이다. 이재준을 계승한 현 대림그룹 회장 이준용의 75년생 세째 며느리 최영윤의 아버지가 삼환기업 회장 최용권이다.
출처 : 진실을 아는자 반드시 승리한다
글쓴이 : 전시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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